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아 테레사(양시칠리아) (문단 편집) === 오스트리아의 황후 === 1790년 9월 15일 마리아 테레사는 외사촌이자 고종사촌[* 아버지 페르디난도의 누나인 마리아 루이사(독일식으로 마리아 루도비카)는 어머니 카롤리나의 오빠인 [[레오폴트 2세]]와 결혼하였다. 두 사람의 자식이 [[프란츠 2세]].]인 [[프란츠 2세]]와 결혼하였다. 결혼 후 마리아 테레지아라고 불리게 되었다. 프란츠 2세는 1792년에 [[신성 로마 제국 황제]]로 선출되었고, 1804년에는 [[오스트리아 제국]]의 황제로 즉위하였다. 두 사람은 성격은 많이 달랐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. [[프란츠 2세]]는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이었지만 마리아 테레사는 (어머니 마리아 카롤리나를 닮았는지) 활달한 성격을 지녔었다고. 그녀는 외가이자 시가인 오스트리아의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에서도 잘 적응했고, 사교 활동을 좋아하여 임신 중에도 모든 무도회와 카니발에 참석하여 춤을 췄다고 한다. 정치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남편의 좋은 조언자이기도 했는데, [[나폴레옹 1세]]를 매우 싫어하였다.[* 어머니 [[마리아 카롤리나]] 역시 나폴레옹을 싫어했는데, [[프랑스 대혁명]]에 희생된 [[마리 앙투아네트]]의 언니였기 때문.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녀 [[마리 루이즈]]는 훗날 [[마리아 카롤리나|외할머니]]와 어머니가 그토록 증오했던 [[나폴레옹 1세]]와 결혼하여 프랑스의 황후가 되었다.] 덤으로 [[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|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]]가 오스트리아의 대공비로 오자 자신의 지위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해 동서인 그녀를[* 남편 [[프란츠 2세]]의 남동생 요제프 대공과 결혼했다.] 수시로 견제했다고 한다. 1807년 4월 13일, 마지막 아이를 조산한 이후 합병증으로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